지난 10월 22일 수원지법에서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소송이라 불리는 고(故) 최인기 씨 사건의 변론기일이 열렸다. 재판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비현실적인 근로능력평가와 강제노동이 빈곤층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고 최인기님의 죽음에 사죄하라”고 든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소송이라 불리는 고(故) 최인기 씨의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수원지방법원(민사1단독 강민성 판사, 17가단531037)은 20일 1심에서 ‘피고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은 고 최 씨의 부인 곽혜숙 씨에게 1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애초 곽 씨가 청구한 금액은 3000만 원이다. 2017년 8월 28일, 1심 소를 제기한 지 2년 4개월 만에 나온 결과다. 원고 측 소송대리인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재판부는 공단에서 한 근로능력평가가 과실이 있으며 위법성이 있다, 이것이 망인의 사망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했다”면서 “수원시에 대해서도 공무위탁자로서의 책임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이러한 인과관계에 대해 국가 책임을 인정한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 선고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박 변호사는 “소송 내내 공단은 제출된 서류만으로 평가하면 위탁받은 업무 다 한 거고 이후 결과에 대해선 책임질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수원시 또한 전문성 있는 공단에서 내린 결과로 판정했기에 수원시의 과실은 없으며, 정부 지침에 따라 조건부과를 하여 위법성이 없다, 고인이 판정 결과에 불복하지 않았기에 수원시 과실은 없다는 취지의 변론을 계속해왔다”며 길었던 재판 과정을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그러나 수급자에 대한 조건부과 자체가 수급자의 행동을 강제하고 인권침해 소지가 있어 신중히 이뤄져야 한다”면서 “근로능력평가 서류 제출만으로 형식적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대상자의 상태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선고가 경각심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조건부 수급제도는 자활을 목적으로 하나, ‘근로능력있음’ 판정을 받았다고 하여 이 사람이 바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면서 “그러나 취업하지 않으면 조건불이행으로 평가받아 수급비를 삭감당한다. 최 씨는 바로 그러한 압박 속에서 일하다가 사망하였는데, 근로능력평가 제도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수원에 살던 기초생활수급자 고 최인기 씨는 2005년 심장 대동맥을 치환하는 큰 수술을 받은 후 더는 일하기가 어려워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2008년에는 2차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2013년 11월, 그는 갑자기 ‘근로능력있음’ 판정을 받으면서 조건부 수급자가 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자활사업에 참여해야만 수급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최 씨는 ’일하기 어렵다‘고 항변했으나 일을 하지 않으면 수급권을 박탈당한다는 압박 속에서 2014년 2월부터 강제로 일자리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 씨는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부종과 쇼크로 병원에 입원하였고 2014년 8월 28일 끝내 사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