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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라 불렸던 이들의 죽음, 애도하는 추모주간 열려

松竹/김철이 2019. 12. 18. 15:41
‘홈리스’라 불렸던 이들의 죽음, 애도하는 추모주간 열려
20일까지 서울역 광장에 ‘홈리스 기억의 계단’ 설치… 무연고자 166명 애도
홈리스행동 “홈리스에게 적절한 주거 제공하고 비적정 주거 질 강화해야”
등록일 [ 2019년12월17일 18시53분 ]

이 아무개 씨가 ‘홈리스 기억의 계단’ 옆에 앉아있다가 곤히 잠들었다. 그가 입은 검은 롱패딩은 찢어진 부분을 꿰매기 위해 바늘과 실 대신 호치키스와 철사 침으로 대신했다. 동료에 따르면 식당가가 많은 서울역 14번 출구 일대에서 술을 즐겨 마신다. 사진 박승원
 

16일 서울역 광장 계단에는 ‘홈리스 추모주간’을 알리는 레드카펫이 깔렸다. 어느 행인은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아래 추모제기획단) 활동가에게 “유명한 분이 오시나 봐요”라고 묻기도 했다. 이내 계단에는 올 한 해 동안 거리와 시설, 쪽방, 여인숙, 고시원 등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던 166명의 홈리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이 적힌 명패가 놓였다. 명패 앞에는 각자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을 기억을 기리기 위한 붉은 장미꽃 한 송이가 하나씩 놓였다. 

 

홈리스행동 등 4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추모제기획단이 서울역 광장에서 16일 오후 두 시 ‘2019 홈리스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홈리스의 적절한 주거 환경 마련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16일에서 20일까지를 ‘홈리스 추모주간’으로 정하고 한 해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던 홈리스들을 추모할 예정이다.

 

2019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이 1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2019 홈리스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홈리스 추모주간은 16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 박승원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홈리스 문제는 ‘주거의 열악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홈리스의 적절한 주거 제공과 비적정 주거 질 강화를 요구했다. 국토교통부(아래 국토부)는 지난 10월 24일 주거지원 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주거취약계층에게 임대주택 2천 호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이 활동가는 “2천 호는 주거취약계층을 위해 항상 정부가 책정하던 숫자다. 그러나 매해 1000호 밖에 공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실상 정부는 기존과 같은 예산을 책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2018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비주택 가구가 45만 가구다. 매입주택 2천 호 공급이 과연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공급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두 달 전 서울시와 중구청이 발표한 남대문 쪽방촌 일부를 포함한 재개발 계획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과거 ‘양동’으로 불렸던 남대문로5가는 사람들에게 ‘서울역 쪽방촌’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이 활동가는 “서울시 재개발 관련 계획에는 쪽방 주민에 관한 대책이 한 글자도 들어가 있지 않다. 곧 200여 가구 주민이 이 사실을 모른 채 보금자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라고 알렸다. 이어 “서울시와 중구청은 여기에 다중생활시설 또는 주상복합건축물 등을 공급해서 주민이 다시 돌아와 살 수 있게 해야 한다”라며 “쪽방 주민이 모두 쫓겨나는 개발이 아니라 다시 돌아와서 주거권을 누릴 수 있는 개발을 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다중생활시설 기준 개선을 위한 제대로 된 대책도 여전히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지난 8일 국토부가 행정예고한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 개정안을 보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다중생활시설 최소면적이나 창 설치 등 기준을 정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그러나 이 활동가는 “국일고시원 화재로 7명의 안타까운 도시빈민이 돌아가고 나서 국토부가 1년 동안 고민한 것이 지자체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일 뿐”이라고 개탄하며 “최소한 방과 통로가 너무 좁아서는 안 된다, 유사시 밖으로 탈출할 수 있게 여닫을 수 있는 창을 보장하라는 기준이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나”라고 촉구했다. 

 

건강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홈리스 문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다. 그중에는 30대 여성이 혼자 만삭의 몸으로 고시원에서 아이를 낳아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아이(故 맹OO의 아들, 2019.6.9~2019.6.10)의 명패도 놓여있었다. 사진 박승원

 

가족 관계가 단절된 홈리스 상당수는 무연고자로 사망한다. 그러나 현재 복지부는 무연고사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내지 않고 있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은 “복지부는 2019년 3월에 작년 무연고 사망자를 2,549명이라고 밝히며, 무연고 사망자 최초로 2,500명을 넘어섰다는 통계자료를 발표했다”라며 “그런데 10월에는 2,447명이라는 통계가 새롭게 나왔다. 도대체 102명의 무연고 사망자는 어디로 갔느냐”라고 지적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는 시대에 무연고 사망자 통계 하나 제대로 발표 못하면서 어떻게 정책을 얘기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힐난했다.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홈리스를 대상으로 하는 ‘명의도용 범죄’ 피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년 동안 홈리스 법률상담을 해온 김 변호사는 “230여 건 상담 가운데 명의범죄로 인한 세금이나 채무 형사사건에 연루된 건이 60%를 차지했다”라면서 “그 결과 통장이 압류되거나 파산까지 이르기도 한다. 몇몇은 구제절차에 드는 시간과 비용 때문에 처음부터 문제해결을 포기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홈리스에게 ‘대출해주겠다, 취업시켜주겠다, 잠자리 제공하겠다’라는 식의 온갖 감언이설로 통장이나 카드 대여를 유도해 미래의 경제성까지 탈탈 털고 있다”며 범죄의 심각성을 알렸다.

 

김 변호사는 “국가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전자금융거래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통장이나 카드를 빌린 사람뿐 아니라 빌려준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3년 이하 징역, 2천만 원 이하 벌금을 매긴다”라며 "명의범죄 피해자를 가해자 또는 가해자와 공범으로 취급하는 국가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명의범죄 피해가 20년이 넘도록 방치되어 있다. 경제적으로 궁박하고 사회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 똑같은 책임을 묻는 것은 평등이라고 볼 수 없다. 또 일일이 길고 어려운 절차를 당사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과정도 공정하지 않다”라며 “정부는 빚에 신음하는 명의범죄 피해자 홈리스에 관한 실질적 구제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2001년부터 매해 동짓날 즈음에 열리는 ‘홈리스추모제’는 22일 오후 6시 40분에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다. 추모제에는 홈리스 법률상담, 팥죽 나눔, 이삼헌 위령무와 추모발언, 정태춘 공연, 홈리스 권리선언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이 아무개 씨가 ‘홈리스 기억의 계단’ 옆에 앉아있다가 곤히 잠들었다. 그가 입은 검은 롱패딩은 찢어진 부분을 꿰매기 위해 바늘과 실 대신 호치키스와 철사 침으로 대신했다. 동료에 따르면 식당가가 많은 서울역 14번 출구 일대에서 술을 즐겨 마신다. 사진 박승원



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출처:비마이너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