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2026년까지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돌봄이 필요해 거주시설에 들어간 사람도 시설에서 나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올해 6월부터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를 위한 선도사업을 시작했지만, 노숙인은 없었다. 노인이면서, 장애인이고, 정신질환자이면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노숙인. 시설에서 살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노숙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 이유와 대안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_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
2016년 6월 9일, 김기성 님은 서울역 우체국 앞 지하도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구급차로 실려 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2주 뒤, 6월 25일 황계원 님은 서울역 광장에 누워 있다가 응급실로 이송됐다. 패혈증이었다. 김기성 님이 사망한 지 꼭 한 달 뒤인 7월 9일, 친구였던 황계원 님도 뒤따르듯 세상을 떠났다. 휠체어를 탄 채로 서울역 앞 한구석을 늘 지키던 두 명이 세상을 떠났지만, 세상은 그들을 몰랐다.
김기성 님이 돌아가신 서울역 우체국 앞 지하도 계단. 한 노숙인이 위태롭게 잠을 청하고 있다. 아래에는 노숙인 응급대피소가 있지만, 휠체어를 타고 내려갈 방법은 없다. 사진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당시 나는 노숙인 지원센터의 아웃리치 상담원으로 일했다. 2014년 1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그들을 만났다. 처음엔 왜 휠체어를 타면서까지 노숙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아무리 복지가 엉망이라 해도, 장애인이라면 당연히 뭔가 지원을 받고 있지 않을까? 나중에서야 두 분 다 이른바 ‘등록 장애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영구적인’ 장애로 판정받지 못한 탓이다. 휠체어가 고장 났을 때조차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 황계원 님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수급을 받고 있었다. 2016년 당시 수급비는 65만 원 정도였는데, 요양병원에 들어갔다 나오면 주거급여가 깎여서 겨우 45만 원이 나왔다. 그 돈으로는 25만 원짜리 쪽방 하나 구해 생활하기도 어려웠다. 쪽방을 구한다 한들, 경사길과 문턱과 계단이 있는 쪽방을 휠체어 탄 장애인이 어떻게 드나든단 말인가. 먹고 사는 생활은 혼자 또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당시 노량진의 ‘문턱 없는 1층 방’이 월세 40만 원이었는데 공과금은 별도였다. 차라리 같이 노숙하는 친구가 있는 서울역 광장에서 수급비를 쓰는 게 나았다.
반면, 김기성 님은 이혼이 되지 않아 기초생활수급마저 받지 못했다. 법적으로 그는 집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 집에는 아내와 자녀들이 살고 있었다. 수급비를 받기 위해서는 상처를 주고받은 아내와 연락을 하고, 이혼을 하고, 집을 증여하는 복잡한 절차가 끝나야 했다. 그전까지 국가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김기성 님을 처음 봤던 겨울, 그의 양말을 벗겨 보니 발이 썩어 구더기가 있는 걸 보고 소스라쳤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발을 자를까 두려워 병원에 가길 한사코 거부했던 그다. 황계원 님은 퇴행성 관절염, 하지정맥류, 허리디스크 등 다양한 질병을 갖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걷지 못하게 된 이유는 요양병원에 입원했을 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서라고 했다. 그들은 처음 봤을 때부터 아팠고, 겨울이 지나고 나면 더 아팠다. 많이 아프면 국립병원이나 요양병원에 2주에서 한 달 정도 들어갔다가 나왔다. 조금 나아 보였다가 또 아팠다. 계속 아팠다. 그들을 만난 1년 8개월 동안 그런 과정이 반복됐다. 아픈 게 너무 당연해서, 그게 ‘위기상황’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그로부터 3년도 더 지난 지금, OO구청의 주거복지팀장은 여전히 내게 묻는다. “한쪽 다리가 절단된 상태로 노숙을 하고 있다고 해서 위기상황이라고 할 수 있냐”고. 종로구 돈의동의 쪽방. 문턱과 계단이 있는 게 ‘보편적인’ 쪽방의 모습이다. 노숙인 임시주거비 25만 원으로 휠체어를 타고 살 만한 방을 구하기는 어렵다. 사진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 휠체어 타고 들어갈 집 없는데 ‘위기상황’ 아니라는 정부 김진수(가명) 님을 처음 만난 건 7개월 전이다. 한쪽 다리를 절단해 휠체어를 탄 채로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앞에 항상 계시는 걸 보고 지나칠 수 없어 말을 걸었다. “뭐 좀 도와드릴까요?” “아니, 괜찮아요.” “식사는 하셨어요?” “이따 컵라면 끓여 먹으면 돼요.”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이어졌다. “밖에서 노숙을 오래 하시면 건강이 안 좋아져요. 시설에라도 들어가지 그러세요?” “입소자들이 폭력을 써서 OO요양쉼터에 있다가 나왔어. 시설엔 안 들어가.” “수급은 받고 계세요?” “기초노령연금 25만 원 받고 있어. 그걸로 라면 사 먹으면 돼.” “장애인연금도 나오지 않아요?” “그런 거 없어. 월 4만 원인가 나온다길래 신청 안 했어.” “에이, 걷지를 못하시는데… 무슨 월 4만 원이에요. 한번 신청해보세요.” 장애 등록을 신청하니, 진수 님은 놀랍게도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기존의 4~6급)’으로 판정됐다. 다리를 ‘무릎 아래로’ 절단했기 때문이란다. 진수 님의 휠체어 손잡이에는 바닥에 까는 깔개와 무릎담요가 걸려 있다. 이 물건들로 한겨울 추위를 견뎌야 한다. 사진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진수 님은 어려서부터 구두회사에서 일했고, 나중엔 구두 패턴 디자인을 했다. 집도 사고 아들, 딸 대학공부도 시켰다. 발을 다치지 않았다면, 당뇨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몇 개월이 지나, 주소불명으로 노령연금마저 끊어지자 진수 님은 방을 구해야 했다. 그때부터 그와 함께 동자동, 돈의동, 영등포 쪽방촌을 돌아다녔다. 노숙인 임시주거비 25만 원을 가지고 얻을 수 있는 방은 쪽방이나 고시원뿐이다. 그러나 고시원은 계단이 있고 복도가 너무 좁다. 쪽방도 마찬가지다. 언덕 위, 아니면 좁은 골목에 있다. 휠체어를 둘 곳이 없다. 화장실은 대부분 ‘푸세식’인데, 심지어 화장실이 없는 건물도 있다. 겨우 문턱이 없는 쪽방을 찾으면 방 관리인이 장애인은 받지 않겠다 한다. 매번 허탕만 쳤다. 관리인에게 겨우 사정해 혼자서는 갈 수도 없는 1층 쪽방을 잡았다. 쪽방에 전입신고를 하고 3개월이 지나야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희망은 잠깐. SH공사에 확인하니, 엘리베이터가 있는 주거취약계층용 매입임대주택은 없단다. 선정이 돼도 4평짜리 방 안에 1년 내내 갇힐 판이다. 65세가 넘으면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도 신청할 수 없다. 그러면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하루 최대 4시간뿐이다. 이 시간으로 어디를 다닌단 말인가. 할 수 없이 주거취약계층 전세임대주택을 신청했다. 9천만 원까지 전세자금을 대출해준다. 자부담은 50만 원이다. 이만한 돈으로 엘리베이터 있는 원룸을 구하기는 힘들지만, 경기도로 나가면 1층 방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또 문제가 생겼다. LH공사는 “이혼이 되지 않은 상태이니 배우자에게 소득조사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7년 전에 다리를 절단하고 가족관계가 끊어져 병원, 시설생활을 거쳐 노숙 중이라고 설명했지만, “지침상 어쩔 수 없으니 이혼을 하라”는 말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임대주택과 이혼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말이다. 서울시공익법센터를 통해 이혼소장을 제출했다. 가족관계증명서에 배우자 주민번호가 나오지 않아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린다 했다. 임대주택 신청 자격만을 바라보고 2년 동안 거리노숙을 하란 말인가.
돈의동에서 그나마 문턱이 낮았던 쪽방 앞 골목. 휠체어를 돌릴 수도 없을 정도로 좁다. 휠체어를 대어놓으면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없다. 사진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이런 사각지대를 메꾸기 위한 ‘훌륭한’ 제도가 있다.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긴급지원대상자로 선정되면 지자체의 추천으로 LH 일반 전세임대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다. 이 경우 9천만 원 기준으로 보증금 450만 원(5%)‘만’ 자부담하면 되고, 2년 후 연장계약 시에는 LH공사의 심사를 받는다. 진수 님의 경우, 2년 안에 이혼을 해야 하는 셈이다. 구청 주거복지팀에 추천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참담했다. “다리를 절단하고 거리노숙을 하고 있다고 해서 위기상황이라 볼 수는 없다,” “긴급지원대상자로 LH공사에 추천을 하려면 배우자 소득조사를 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특혜는 줄 수 없다.” 보건복지부의 ‘2019 긴급지원사업 안내’에 따르면, 노숙한 지 6개월이 되지 않은 초기 노숙인만 긴급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화재가 나거나 월세가 없으면 위기상황이고, 집에서 나와 6개월 미만이면 위기상황인데, 휠체어 타고 들어갈 집이 없어 6개월 넘게 노숙하면 위기상황이 아닌 셈이다. 이 지침에는 ‘이혼이 되지 않았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달리한다고 확인되면 소득조사에서 제외한다’고 되어 있지만, 구청에서는 “긴급복지지원법률에는 근거가 없지 않냐”고 했다. 진수 님은 자녀도 두 명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이 안 될 뻔했지만 사유서를 제출했다. 복지조사과에서 자녀들과 연락이 되어 배우자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냈다고 한다. 다행이다. 임대주택 신청을 하려면 소득조사 동의서를 받아야 하니, 연락처를 알 수 있는지 물었다. 이번에는 “배우자와 관계가 끊어졌다고 보고 수급을 주는 거니, 아내 분과 연락해 소득조사 동의서를 받으면 안 된다”고 한다. 수급과 임대주택 중 하나를 고르라는 말이다. 당장 어차피 월세를 못 내니 당연히 수급을 택할 수밖에 없다. 수급을 받아 거리노숙을 하며 보증금 500만 원을 모아 이후 엘리베이터가 있는 원룸에서 월세와 공과금 50만 원을 내고, 남는 25만 원 정도로 생활하면 될 일이다. 법 앞에선 간단한 일이다. 어쩔 수 없으니. 법 앞에 한 문지기가 서 있다. 이 문지기에게 한 시골 사람이 와서 법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그에게 입장을 허락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 그 시골 사람은 곰곰이 생각한 후,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가능한 일이지”하고 문지기가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 돼.” 카프카의 소설 『법 앞에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2016년, 서울역 앞 광장엔 휠체어를 탄 노숙인이 있었다. 매일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다. 법은 ‘아직은’ 열어줄 수 없노라고 말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서울역 광장에 없다. 오늘도 법은 여전히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무어라 답해야 하는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