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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탈시설 흐름 속 ‎IL센터 역할은?

松竹/김철이 2019. 12. 6. 20:29
거부할 수 없는 탈시설 흐름 속 ‎IL센터 역할은?
전국 IL센터 모여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에서의 역할과 과제 공유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욕구 입증’ 아닌 ‘권리 보장’으로
등록일 [ 2019년12월06일 16시30분 ]

5일,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정책토론회 ‘탈시설운동 15주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역할과 과제-동료들과 지역에서 함께 살다’가 열렸다. 사진 허현덕
 

부산시는 지난 4일 ‘부산 장애인 탈시설 자립지원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계획을 세운 지자체는 서울시, 전주시, 대구시, 광주시, 경기도 등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선언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은 계획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중앙정부조차 탈시설 계획에는 손을 놓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문재인정부는 탈시설-자립생활을 국정과제로 선정했지만, 임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련한 예산 책정도, 로드맵 수립도 전무하다.

 

그 가운데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IL센터)는 지원기관으로 그야말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역마다 확연히 다른 탈시설정책 환경에서 IL센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전국 IL센터가 모여 IL센터의 역할과 과제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5일,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정책토론회 ‘탈시설운동 15주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역할과 과제-동료들과 지역에서 함께 살다’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와 남인순·윤소하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주관했다.

 

이날은 서울과 대구 등 탈시설정책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는 지역의 탈시설 사례관리를 중심으로 긍정적 효과를 공유하고, 이를 위해 IL센터가 탈시설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했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가 ‘서울지역 탈시설지원체계 현황 및 과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욕구 입증’ 아닌 ‘권리 보장’
 
서울시는 지난 2009년 석암투쟁을 기점으로 지자체 중에서는 장애인 탈시설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2013년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계획을 가장 먼저 세웠고, 지난해 12월에는 박원순 시장이 ‘탈시설권리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자립생활주택제도, 활동지원 추가지원, 탈시설 정착금 제도 등도 서울시가 가장 처음으로 도입했다. 지난 2일에는 서울시 지원주택에 32명의 탈시설 장애인이 입주하면서 새로운 장애인 자립생활 주거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은 2013년부터 ‘거주시설연계사업’을 통해 IL센터가 서울시 장애인거주시설 45곳에 대한 탈시설욕구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2019년부터는 IL센터와 거주시설을 1:1 매칭해 사업을 확장했다. 노들IL센터는 이 사업을 통해 시설장애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6년간 49명이 탈시설했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는 “다른 지역에서 서울의 탈시설계획의 구성이나 용어를 그대로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서울시의 방향이 곧 앞으로의 탈시설정책의 방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서울시 탈시설정책의 방향을 △지원주택 제도 활용 △24시간 지원체계 △탈시설을 개인에서 시설단위로의 변화라고 제시했다.

 

시설단위로 탈시설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거주시설 장애인의 78%가 발달장애인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의사표현이 잘 되지 않을 경우가 있는데, 현재의 탈시설은 욕구조사에서 개인이 의사표시를 명확히 해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욕구조사를 명확히 하지 않은 사람은 시설이 폐쇄될 때 다른 시설로 전원조치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김 활동가는 “이제는 ‘탈시설 욕구 입증’이 아니라 ‘탈시설 권리 보장’으로 정책 방향이 변해야 한다”며 “또한 발달장애인의 연령과 특성을 파악해 지역사회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주거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노금호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대구시립희망원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폐쇄 1년 탈시설 지원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 “대구 희망원 탈시설 장애인 연구, 자립생활이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라는 사실 입증해”

 

대구에서는 김 활동가가 주장한 ‘탈시설 권리 보장’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구 희망원 시민마을 폐쇄 당시 ‘탈시설 욕구 및 지원 조사’에서 ‘무응답층’으로 분류되었던 9명의 중증·중복 발달장애인들에 대해 박숙경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와 제임스 콘로이 미국 성과연구소장이 함께 진행한 연구에서 △사회통합 활동 △일상생활에서의 선택과 자율성 △삶의 질 △적응행동 등이 모두 향상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대구 희망원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에 참여했던 노금호 대구사람IL센터 소장은 “이번 연구에는 조건 없는 탈시설과 지역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드러나고 있다”며 “IL센터의 역할은 운동성을 가진 특정한 ‘영웅’이 아닌 보편적인 장애인이 탈시설 권리 보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 소장은 이번 희망원 탈시설-자립생활 사례 관리 과정에서 겪은 △대외활동 지원 △활동지원서비스 △낮 활동 △사례관리 △금전관리 △의료관리 지원에서 겪는 문제와 해결 과정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을 하기도 했다.

 

특히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과정에서 시설에서 받은 정보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 소장은 “시설에서는 귀가 안 들린다고 했던 분이 정밀 검사에서 청력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고, 현재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있다”며 “어떤 분은 그동안 써 왔던 이름이 아닌 실제 이름을 찾은 경우도 있었다. 시설 건강검진 결과 건강에 이상이 없던 분은 초기 암이 발생하기도 했다”며 기존 정보가 모두 옳지는 않다는 전제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정책토론회에서는 전국 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관계자들의 모습. 사진 허현덕
 

- “당사자 가장 잘 아는 IL센터 탈시설-자립생활 주도는 당연해”

 

그러나 서울과 대구시 등의 특정 지역, 문제시설을 제외한 지역의 탈시설운동은 추진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와의 소통부재와 공적지원의 부재에서 IL센터는 많은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강원, 충북, 경남 등은 이동지원 등 환경적 인프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조은별 김포IL센터 사무국장은 “경기도도 중증장애인 탈시설 자립생활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IL센터에 지원과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IL센터가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의 중심부에 서게 된 것은 정부나 지자체, 다른 민간단체가 손 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공적 지원체계의 부족은 결국 가족의 반대로 이어지고 탈시설-자립생활의 장벽이 된다고 설명했다.

 

광주시는 상대평가를 통해 국비와 시비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결국 IL센터간 경쟁을 부추겨 IL센터간 네트워크가 와해되어 탈시설-자립생활 협력체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경남과 충북은 시설장애인을 면담하는 것조차 힘든 실정이었다. 이에 김필순 노들IL센터 사무국장은 “‘탈시설’보다는 ‘자립생활’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시설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었다”며 “서울에서도 시설 안에서의 상담보다는 외부 활동을 통해서 만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IL센터의 본래 목적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노금호 소장은 “IL센터만으로 탈시설운동을 지속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점이 존재하지만, 현재로서는 IL센터 이외의 대안이 없다. 우리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당사자끼리의 동료성을 유지하며 실천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현재 IL센터의 역할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현실적의 장벽은 높다. 김정하 활동가는 “장애인 주거전환 지원은 IL센터 역할에서 벗어난 만큼, 공공기관과의 연계가 필수적”이라며 “IL센터는 공공서비스를 설계하고, 서비스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중간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장애계의 주장대로 장애인거주시설 폐쇄법을 제정해 정부의 의지를 선언적으로라도 표명한다면 공공서비스 연계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고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출처:비마이너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