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여기에 계시는구나! |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님(명동대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5. 6. 22. 10:15

여기에 계시는구나!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님(명동대성당 주임)

 

 

우리는 미사 때마다 사제의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 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 되도다.”라는 외침에, 백인대장의 말(마태 8,8 참조)을 빌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 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라고 우리의 믿음을 고백한 다음, 성체와 성혈을 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위한 양식이 되 실 것임을 공생활 중에 밝히셨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 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루카 9,12-17 참조)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마르 8,1-8 참조) 유다인 지역과 이방인 지역에서 각각 이루어진 이 놀라운 사건을 통하여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위한 양 식이 되어 주실 것임을 드러내셨습니다. 또한 제자들과 함 께하셨던 최후 만찬 때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 태 26,26)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 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7-28)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라며 성찬 례를 제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9,13)라고 말씀하시지만, 실상 당신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우리의 육체뿐 아 니라 영혼까지도 기르는 ‘생명의 양식’으로 당신의 몸과 피 를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기 위하여 주님의 몸(빵)을 먹고, 주님 의 피(잔)를 마십니다.’라고 신앙의 신비를 노래합니다.

 

성체와 성혈은 ‘하느님의 어린양’, ‘부활하신 주님’이십니 다. 작년 부활 대축일을 지내며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뵌 것처럼, 나는 어디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뵐 수 있 을까?’라는 물음이 마음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러다가 미사 때 성체 성혈의 축성 이후 문득 ‘아, 여기에 계시는구나! 어 디를 찾아갈 것이 아니라, 바로 성체와 성혈이 부활하신 주 님이시구나!’라는 느낌이 깊이 올라왔습니다. 매번 성체와 성혈을 축성하고, 신앙의 신비를 선포하였지만, 이전과는 다른 그 순간의 느낌은 커다란 기쁨이었고, 성체 신심을 더 욱 깊이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체와 성혈에 대 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하여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미사 경문의 말씀에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우리 생명의 양 식인 성체와 성혈은 신비입니다. “엎디어 절하나이다. 숨어 계신 천주성이여, 두 가지 허울 안에 분명 숨어 계시오니,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내 마음은 오직 믿 을 뿐”(《가톨릭 기도서》, 1972년판)이라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처 럼 신앙고백의 찬미를 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믿음이 믿음 을 더욱 깊게 할 것입니다. 깊어지는 믿음이 우리를 더 깊 은 희망과 사랑으로 이끌 것입니다. 성체와 성혈의 주님께 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