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의 패러다임 | 차바우나 바오로 신부님(서울성모병원 영성부장)
하느님 나라의 패러다임
차바우나 바오로 신부님(서울성모병원 영성부장)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생각의 틀’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점진적인 축적이 아니라 생각의 틀이 바뀌는 변화가 혁명적인 발전을 이룬다는 이론을 담고 있 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세상은 평평할 거 라 믿었기에, 멀리서 오는 배가 돛대부터 보이는 현상을 설 명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증거를 토대로 패 러다임을 바꾸고 나서야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런 생각의 전환은 배를 타고 계속 가더라도, 도달 하는 끝은 낭떠러지가 아니라는 믿음의 근거가 되어 지구 를 한 바퀴 도는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렇듯 패러다임 의 전환은 기존에는 설명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하게 만들어 급격한 발전을 가져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내주어라.”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누군가는 볼멘소리할지도 모릅니다. 그 런 식으로는 세상을 살 수 없고, 그건 착한 게 아니라 이용 당하기 좋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예수님 말씀대로 살 아가는 훌륭한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을 보면 설사 본인이 그렇게 산다 하더라도 자녀에게마저 다른 뺨 도 맞고 오라고 할 수 있는 부모님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세상의 기준 하에 사는 것과 하느님 말씀을 실천 하는 것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복음이 구닥다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의 패러다임은 우리가 모두 ‘형제’이며 서로 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부모님이시고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입 니다. 만일 형제끼리 각자의 것만 챙기고 조금의 양보도 없 이 서로 보복하며 산다면, 부모의 마음은 아플 것입니다. 부 모는 자식들이 서로 나누고 의지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부 족해도 참아주고 우애 있게 지내라고 합니다. 이것을 머리 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따르긴 어렵습니다. 세상의 패러다 임으로 살다 보면 ‘누가 저의 형제입니까?’ 혹은 ‘제가 동생 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며 매몰찬 얼굴을 드러냅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나서야 하느님의 패러다임으로 넘어갑니다. 그전까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알 수가 없고, 설령 이해했다 하더라도 마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던 사람들과 같았습 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았을 때 비로소 머리를 넘어 예수님 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한 깨달음은 삶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완전한 투신을 이루게 합니 다. 그리고 성령에 힘입은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외 칩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다.”(1코린 12,3)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남이 아니라 형제였습니다. 이 기쁜 소식 을 형제들에게 전하기 위해 세상 끝까지 나아갔고, 또 형제 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