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말씀의 이삭 | 다른 생명으로부터 배우기

松竹/김철이 2025. 5. 20. 12:37

다른 생명으로부터 배우기

 

 

눈이 쌓이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그런 날씨에도 절기 에 맞춰 푸른 생명들이 눈 덮인 흙 속에서 뾰족이 순을 틔우고, 그리고 메마른 나뭇가지에선 꼭 여드름 같이 보 이는 움을 틔우는 걸 바라보면 새삼 눈물겹도록 경이롭 습니다.

 

저도 엄마가 돼서 아이를 낳고 키울 때가 있었지만 그 땐 저의 인간 실존으로서의 열등감, 분노 따위가 한꺼번 에 솟아올라 사람 생명의 경이로움에 눈물겨울 틈도 없었 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제가 하고 싶었으되 하지 못했 던 것들을 아이들에게 마구 투사하는 것, 엄마로서 제가 저지른 죄 중에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벌써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 는 동안, 자식들에게 용서도 많이 빌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 잘못의 원인에 대해 변명하고 이해받기를 바라기도 했 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제 손에서 떠난 지 오래.

 

빈손인 제게 새로운 생명이 왔습니다. 벌써 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길고양이입니다. 처음엔 고양이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모르니까 사람인 저의 생활 경험만으로 고양이를 생각하고 판단하고 같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날 이 가면서 고양이와 사람이 서로 다른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절대적으로 독립적이어서 사람의 욕구나 관습이나 가치관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 바로 이 점에서 저는 고양이를 스승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많이 먹었거나 몸에 맞지 않은 걸 먹으면 다 토해서 몸을 비웁니다. 서로 질투하고 기분 나빠서 다퉈 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곧 화해합니다. 함께 살면서 저는 고양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고양이는 사람 말을 필 요한 것만큼 습득합니다.

 

집사라고 불리는 사람 식구가 좋아지면 사랑을 아낌없 이 표현합니다. 앞발로 좋아하는 사람의 몸 어디라도 꾹 꾹 눌러 줍니다.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제 머리맡이나 허 리, 발치에 있는 고양이를 보면 가슴이 왈칵 뜨거워집니 다. 제 물건이나 옷에 몸을 비비고 끌어안고 저를 느끼는 태도엔 정말 가슴이 녹아내릴 것 같습니다. 사랑받는다는 확인만으로도 고양이는 제 정신과 의사입니다. 제가 고양 이를 길러주는 것 같다가도 어떤 땐 고양이가 저를 기른 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았 을 땐, 털이 날리고 옷에 붙고 그 털 때문에 침구를 바꿔 야 하는 것이 엄청난 손실 같았지만, 지금은 고양이에게 받는 위안과 즐거움이 무엇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압 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 집에서 고양이가 저를 보살핀다 고, 그렇게 말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