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 |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저에게 청천벽력 같은 선 고가 떨어졌습니다. ‘제1형 당뇨병’이라는 선고였죠. 췌장 에서 인슐린을 제대로 생성하지 못하는 병을 말하는데 유 년기에 많이 발생하여 ‘소아 당뇨’라고도 불리고, ‘인슐린 의존성 당뇨병’이라고도 불립니다. 유전도 아니고 정확한 원인이 밝혀진 바 없는 이 병을 처음 선고받았을 때는 눈 앞이 깜깜했습니다. 당시 저의 나이는 25살이었습니다. 한창 하고 싶은 일도 많았는데 이런 병에 걸리다니! 받아 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많이 먹거나, 술, 담배를 하거나, 생활 습관이 문제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평생 인슐 린 주사를 맞아야 하고, 음식을 조절하며 살아야 하고, 합 병증을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게 십자가처럼 느껴졌습 니다. 건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이토록 사람을 작 아지게 만드는지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인생 전체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 다. 어떻게든 이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한다면,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께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 서는 십자가 고통마저 받아들이며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나는 어떻게 이 병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저도 제 병을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병 자체를 사랑한다 기보다 병을 짊어짐으로써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으 며 매 순간순간을 사랑하기로 한 것입니다. 순간을 사랑 하니, 삶 속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고맙고 소중한 인연이니까요. 또, 내 삶을 유지시켜 주는 음식에 감사하며 음식의 재료와 이 음식이 저에게 오기까지 애써 준 수많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 것이죠.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은 (지금은 한국으로 귀화하셨지만)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님입니다. 먼 타국에 와서 가장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있는 분이니 말입니다. ‘안 나의 집’은 노숙인을 위한 급식소와 위기 청소년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는 곳인데 저도 이곳을 후원하면서 가끔 봉사하고 있습니다. 갈 때마다 ‘사랑은 저렇게 하는 거구 나!’라는 깨달음을 얻곤 합니다. 그래서 제 생일에 선물을 주시려는 분께 축하의 마음만 받고 선물 대신 ‘안나의 집’ 에 작은 도움 주시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이번 제 생일에 도 덕분에 많은 축복과 사랑을 받았고, 또 여러 후원으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하고 아름다운 일 입니다.
예수님을 몰랐다면 이 모든 일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저는 제 십자가를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당연히 십자 가를 통한 사랑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또 저의 사랑이 더 많은 사랑으로 퍼져나가지도 못했겠죠. 예수님을 알아 서 참 다행입니다.
글·구성 서희정마리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