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보따리

신앙 이야기 | 죽음을 배웅하는 봉사

松竹/김철이 2025. 2. 17. 08:09

죽음을 배웅하는 봉사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마치 한 토막 밤과도 비슷하나이다. 주여! 당신만은 영 원히 계시나이다.” 시편 90편 4절을 인용한 성가가 장례 미사 고 별식 때 울려 퍼지면 살며시 흐르는 눈물이 한없 이 작아지는 내 모습을 적셔준다. 죽음은 곧 살아 있는 자들의 거울인 것 같다. 본당에서 죽은 자들 을 많이 접하는 단체가 있다면 아마도 연령회가 아닌가 싶다.

 

본당에는 많은 단체가 있다. 주로 본당 안에서 많은 봉사를 왕성하게 하지만, 그중 연령회는 본 당 밖에서 죽은 자를 통해 신자인 유족들 또는 비 신자 유족들 사이에서 봉사를 하게 된다. 본당에 서 임종한 신자가 있으면 당연지사 연령회를 먼 저 찾는다.

 

인생의 새출발을 하는 결혼식은 좋은 날을 택 일해서 그 시기와 시간을 정하지만, 돌아가시는 분들은 시기와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연령회에서는 임종 소식을 듣게 되면 본당에 알리고, 먼저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유족을 위로 하고 고인을 위한 연도를 시작한다. 이후 천주교 장례에 따른 모든 봉사를 2박 3일, 때론 3박 4일 을 고인과 유족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고인의 마 지막 배웅까지 최선을 다한다.

 

사실 교회 밖에서 큰 선교를 하면서도 때론 장 례식장, 장지에서의 식사 문제로 비난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물론 봉사한다고 해서 좋은 소리 만 들어야 하고. 대접을 바라는 것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교회 안에서는 봉사한다는 이유로 대가를 바 라고 갑질하는 봉사자들도 있다. 우리는 봉사함 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리스도의 향 기를 뿜어내는 거룩한 삶을 살기를 바라신다.” (2 코린 2,14-15 참조)

 

봉사는 반드시 평가도 받지만, 서로의 증인이 되기도 하고. 하느님 심판의 기준이 될 수도 있기 에 봉사에는 분별력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말씀하셨다. ‘일한 사람은 먹을 자 격이 있다’라고.

 

노장들로 구성된 연령회는 오랜 세월 교회 안 에서 묵묵히 봉사하며 신앙의 버팀목이 되어준 원로이기도 하다.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봉사로 열정을 쏟는 그분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봉사하 지 않도록 본당의 관심 어린 사랑이 동반 되었으 면 좋겠다.

 

어느 가수분의 노래가 생각난다. 지금은 고인 이 된 그분의 노랫말처럼 “인생은 나그네 길 어 디서 왔다가 어디로 흘러가는가”. 모든 것은 다 흘러간다. 무의미하게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 라,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 바로 하느님의 시간 속 으로,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과 죽음도 함께 동전의 양면처럼… 하느님 안으로 선한 것 도, 악한 것도 흘러 들어간다.

 

“명성이 값진 향유보다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거기에 모든 인간의 종말이 있으니 산 이는 이를 마음에 새길 일이다.” (코헬 7,1-2)